귀신 나오는 영화는 예고편도 안 보는 내가 엑소시즘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네 번 봤다. 세상에 난 세 번인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네 번 갔어 극장에. 며칠동안 내 정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대학생 때 엠티 갔다가 선배가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틀어서 이틀 밤을 샜던 기억에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 영화는 호러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대중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미드 슈퍼내추럴과 영화 콘스탄틴의 사이에 위치하면 적절할 정도의 공포도. 그런데 같이 간 친구는 엑소시즘 시작할 때 부터 쉴 새 없이 자지러지더라. 나보다 무서운 거 못 보는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매니아도 아니고 호러 장르엔 근처도 안 가는 내가 이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실하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무슨 장르든 작자가 표현하고 싶은 걸 전부 우겨넣거나 반대로 넣을 게 없어서 쓸데없는 걸 구겨 넣는 작품들이 흔한데, 이 작품은 충분한 설정과 자료조사를 한 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심만 부려서 골라담아냈다는 게 느껴진다. 억지 반전 없고, 시나리오에 배배 꼬이는 부분이나 찜찜한 데가 없다. 그리고 강동원의 비주얼이 참으로 정갈하다. 사실 강동원한테 수단을 입혀 놨으니 더 이상 욕심부려선 안 되는 게 맞긴 하다.
단 평이하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강동원 때문에 보러 가긴 했지만 날 감동시킨 건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구마가 이뤄지고 있는 어두운 골방과 번화한 명동 거리가 교차하는 장면과, 도망쳐나온 최부제가 어둠 속에서 밝은 거리를 간절히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반대로 거리에서 어두운 골목 속의 환영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연출은 내가 원래 몸살나게 좋아하던 거라 ㅠㅠㅠㅠㅠㅠ 아니 일단 서울을 배경으로 엑소시즘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게 감동적 ㅠㅠㅠㅠㅠㅠㅠ 예고편만 봤을 땐 유치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ㅠㅠㅠㅠㅠㅠ 퇴마록의 한이 풀린 느낌이랄까. 진여신전생에서 도쿄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 배경이 서울이었으면 ㅠㅠㅠㅠㅠ 하고 부러워했던 한이 풀린 느낌이랄까. 감독님 이런 영화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배우님들 감사합니다.
또 보러 가고 싶은데 너무 자꾸 보면 단점만 눈에 들어오게 될 거라서 자제하고 있는 중. 오래오래 상영해주세요. 또 보러 갈 테니. 그리고 웬만하면 속편도 좀 제발.
+ 오프닝 시퀀스를 정말 잘 만들었다.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한 음악도 좋았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이미지들과 영화 이해에 필요한 키워드를 영상과 텍스트로 압축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음.
배우들 연기가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구멍이 하나도 없음. 그리고 다들 그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 특히 주연배우 세 명은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도 없게 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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